전북특별자치도와 전라남도의 경계가 나누어지는 곳이다. 노령산맥의 고개인 갈재(한자어로 노령)을 넘으면 전남이다. 실제로 과거부터 전북과 전남이 교류하는 교통의 요충지였으며, 현재는 갈재 아래에 뚫린 호남고속도로의 호남터널과 1번 국도 호남제2터널로 전북과 전남을 왔다갔다한다. 여러모로 교통의 요지인지라 5.18 민주화운동 시기에는 이 곳을 기점으로 신군부가 전라남도로 통하는 길목을 죄다 봉쇄하며 군부대가 돌아다니는등 살벌한 분위기가 감돌았기에 언론통제에도 불구하고 정읍 사람들은 뭔가 큰일이 났다는 것을 타지인들에 비해 일찍 체감했다 전해진다. 문화적으로도 이 노령산맥이 전북과 전남의 경계가 되어서, 전라남도 장성군과 붙어 있어도 정읍 사투리는 전남의 사투리와 많이 다르며 여느 전북 사투리와 별 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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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이전 마한 구소국이 위치해 있었다고 하며, 백제 때에는 정촌현, 대시산군, 고사부리군의 3개 군이 설치되어 있었다. 신라 경덕왕 때 전국의 행정단위 명칭을 개정하면서 정촌현→정읍현으로, 고사부리군→고부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후 고려 시절에는 고부군이 중심이 되고 정읍현은 그 속현이 되었다.
조선시대 초에 태산현이 인근의 인의현과 통합되어 태인현이 되었다.
조선 초에 속현제도를 없애고 직촌화가 이루어지면서 정읍현은 독립된 현이 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기존의 감무 대신에 현감을 배치할 수 있게 제도가 변경되었다. 정읍현은 1589년(선조 22)에 고부군의 속현에서 벗어나 이순신이 정읍초대현감이라는 글이 많이 보이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1481년(성종 11)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 이어 1530년(중종 25)에 전55권으로 완성된 [신증동국여지승람] 정읍현 조에는 "관원: 현감, 훈도 각 1인이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무엇보다도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에 들어가 검색하면 이순신 이전의 정읍현감이 많이 확인된다는 사실이다. 조선 중기인 1589년(선조 22년)에 정읍 현감으로 이순신이 부임한다. 더군다나 이순신이 정읍현감으로 있던 시절에는 태인 현감이 공석이어서 이순신이 태인 현감 업무까지 겸직으로 다 처리했다. 이순신이 승진하여 떠나갈 때 백성들이 훌륭한 사또를 데리고 간다며 승진반대 청원까지 냈다고 하며, 수령직을 겸직했던 태인현에서는 이순신을 승진시키는 대신 태인현감으로 전임시켜 달라는 청원까지 했다고 한다. 이순신은 약 1년간 정읍 현감을 역임하다가 진도군수, 가리포첨절제사 등을 거쳐서 1591년 전라좌수사가 되어 여수로 떠난다. 이 중 중간의 벼슬들은 선조가 이순신을 승진시키기 위해 형식상 징검다리 식으로 임명한 것이어서 실질적으론 정읍 현감에서 곧바로 전라좌수사가 된 형태이다.